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관람 후기
안녕하세요, 최근 일상 곳곳에서 '나이를 먹었나' 느끼는 사진홀릭입니다.
미술관을 찾는 이유
코로나19 심리 방역을 위해 종종 미술관을 찾습니다. 예전엔 미술 감상이 굉장히 어렵고 정적이고 그래서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일이라 여겼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보다 더 좋은 취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주제의 생활밀착형 작품 전시가 늘기도 했고요. 요즘은 스마트폰 앱과 연계한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이 워낙 잘 되어 있어 작품을 이해하기 쉬워졌습니다. 무엇보다 일상에서는 내 머리와 마음에 있는 무언기랄 꺼내쓰기만 하다가 평소 상상도 안해봤던 비주얼, 세계관, 문제의식이 담긴 미술 작품들을 접하다 보면 제게도 '영감(inspiration)'이라는 것이 차오르거든요.
메말랐던 감성에 밀물이 들이닥치고,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솟아나고...그 힘으로 똑같은 일상을 조금은 색다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생활반경에 미술관이 있다는 건 매우 고마운 일입니다. 서울 시민들에겐 서울시립 미술관이 있죠.
서울시립 미술관하면 서소문에 있는 본관만 생각하기 쉽지만 노원구 중계동에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이, 관악구 남현동에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중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은 4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사당역 바로 인근에 있습니다. 6번 출구로 나왔을 시 약 130여 미터, 도보로 2분 정도 걸립니다.
접근성이 좋은데다 입장료도 무료! 안 가볼 이유가 없습니다. 미술이 고프고 영감이 고플 때 가벼운 산책 삼아 가보시기 딱 좋습니다. 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 가면 좋은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원래는 00이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미술관 건물이 조금 특별하게 생겼습니다. 한마디로 고풍스러워요. 미술관 자체가 미술작품 느낌? 근사한 사진 배경으로도 손색없는 모습입니다. 이유는 바로
이 곳이 약 100여년 전에는 '구벨기에영사관'이었기 때문입니다. 미술관의 설명에 따르면 '대한제국정부가 우리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는 세계열강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찾은 해법이 중립국이었고...(중략)...그렇게 인연을 맺게된 나라가 벨기에'였다고 해요. 선조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으나 결국은 암흑의 일제시대를 맞다보니 당시 외교적 노력, 발자취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었는데요. 우리 삶 밖에 있었던 구벨기에영사관이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이 되어 다시 시민 곁에 돌아왔고, 건물 자체의 히스토리를 통해 우리 근대사를 돌아보고 복원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곳은 예술의 전당이자 역사의 현장이라 명명하고 싶습니다.
현재는 박유아 작가의 초상 프로젝트 '단순한 진심 51 LIVES'라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2020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의 마지막 전시였다는데 새해 초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박유아 작가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번 프로젝트에선 한국 해외 입양인의 40여점 초상을 중심으로 작가 자신과 그들의 삶의 여정을 담담한 시선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국 해외 입양인 100인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사이드 바이 사이드'(2018, 글렌 모리와 줄리 모리 부부 감독)의 작품이 모티브가 되었고, 제목의 '단순한 진심'은 '인간 실존의 가치를 사심없이 바라보는 인간애가 담긴 태도'를 뜻한답니다. 실제로 아이패드를 통해 본 인터뷰 영상에서도, 박유아 작가의 초상화 작품들에서도 입양인이기에 엄청 슬프다거나 너무 힘든 삶을 살았다는 식의 묘사는 없었습니다.
'입양'이라는 경험 자체는 평범하지 않고 한편 안쓰러운 것이지만 '입양인' 한 분 한 분은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이고 또 매우 주체적인 삶을 살아내고 계십니다. 주어진 환경을 긍정의 의지로 극복하고자 하는 작품 속 주인공들의 '위버멘시'적 인간 유형에 주목했던 작가의 시선에 저도 무한 공감을 보냅니다.
그리고 남은 키워드는 '정체성'입니다. 현재 자신의 환경과 상황에 만족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뿌리를 탐고하고 찾고, 소통하고 싶어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하신 입양인 분들을 작품을 통해 만나면서 '모국이란 뭘까, 오리진이란 뭘까,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찾으려고 노력한 적이 있는가, 찾았나'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더군요. 이렇게 저만의 영감이 채워져 갑니다.
일반 미술관, 전시관이라기 보다 집의 느낌을 주면서도 시대와 국가(벨기에풍이랄까)와 사는 양식은 살짝 비껴가 있는 건물이라 그런지 가족과 해외 입양이 주요 소재인 '단순한 진심 51 LIVES' 전시와 더욱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2월 전 꼭 한번 가보시길 권합니다.
참고로 미술관 입장 시 방역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체온측정, 손소독, 명부기입은 물론 들어가는 사람 수를 조절하는 시스템도 운영 중이었고 미술관에서 유일하게 관람자의 터치가 필요한 아이패드 인터뷰 영상 관람 시엔 1회용 장갑을 제공했습니다. 안심하고 이용하셔도 됩니다. ^^
* 미술관 전용 주차장이 없습니다. 가급적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하고(사당역 6번 출구에서 도보 2분) 혹시 차량을 가져가셨다면 미술관 인근에 유료 주차장이 두 군데 정도 있으니 활용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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